밤이다.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왔다. 영어를 못해 답답했다. 농담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내가 무슨 말을 하면 한 번은 되물어 보는게 기본이니 그 맛이 살아날리가 없다. 영어가 꽤나 유창한 그네들이 무슨말인지 못 알아 먹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what?하고 내게 되물을 때면 주눅이 들어버린다. 이렇게 말 한마디를 못하나. 답답하기 그지 없다. 조용한 식사. 조용한 축하. 알고 있는 말만 제한되게 사용하다보면 토가 나올 지경이다. 지겨워서...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해도 잘 알아 듣지도 못하겠고...많은 말을 하고 싶었다. 농담도 하고 싶고. 같은 hibachi 테이블에 앉은 라틴 아메리카계 사내가 맨체스터 시티의 축구선수 카를로스 테베즈와 꼭 닮았으나 그런 이야기조차 나눌 상대가 없었다. 절로 서울 친구들 생각이 났다. 내가 아니더라도 그들이 먼저 테베즈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내 세계를 진정으로 궁금해하는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그 친구가 궁금해 죽겠고. 그래서 언어에서 오는 불편함쯤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이 곳 어디에 가야 그런 친구를 만날수 있나. 너무 순진한 생각인가.

어제부터 콧물이 참지 못할만큼 나와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알러지약도 말을 듣지 않고, 잠도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 몇일 전 부터 목이 심하게 부었는데 열도 있는듯 하고 아무래도 감기인 것 같았다. 오전 수업을 빼먹고 누워서 잠을 자다가 근처 마트로 약을 사러 나갔다. 약은 신통하게도 콧물을 금방 멎게 했지만 정신을 몽롱하게 했다. 불꽃투혼으로 친구의 생일 저녁자리에 갔다가, 또한번 투혼을 발휘하여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Maker's Marks는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었던 것이 었기에...감기에 걸렸다고 두어번 손사래 친게 내가 했던 저항의 전부였다. 언제나 술을 한 번 이겨볼까.

뭔가 우울한 밤이다. 술 한 잔이 더 생각나는...

by 아날로그 | 2009/11/19 13:32 | Living in Virginia | 트랙백 | 덧글(6)
그리운 것들
삼일째 비가 내리면서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다. 미리 장만해 둔 장갑을 조만간 꺼내지 않을까 한다. 날이 쌀쌀해지면서 이상하게 자꾸만 집 생각이 난다. 30년이 넘은 아파트인데다가 본래 발코니였던 곳을 거주공간으로 개조한 탓에 겨울이면 유난히 추운 내 방. 양말신고 손은 츄리닝 바지춤에 집어 넣은채 잠을 청하던 그 공간이 왜 자꾸 생각나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다고 믿는 이불 속에서 가족들이 모두 하루를 시작했을 무렵에서야 겨우 빠져나와 유난히 커다란 거실 창문에 서서 한적한 겨울 아침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그렇게도 자꾸 생각나는 것이다. 그리고는 뜨거운 물로 따뜻한 샤워를 하고 추운 방에서 서늘한 기운을 맨 몸으로 맞는 것, 외출준비를 마치고 서울의 그 매서운 바람 속으로 들어서는 것까지 어느 하나 그립지 않은 것이 없다. 한적한 늦은 오전의 지하철 풍경은 어떨 것이며, 명동거리에는 얼마나 많은 길거리 음식들이 따뜻한 김을 모락모락 피워내고 있으련지.또 그런 추위에는 상 가운데를 독차지한 냄비요리와 소주 한 잔이 제격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비가 막 내리기 시작한 수요일 밤에는 윤정이에게 부탁하여 소주 한 잔을 얻어 먹었다. 윤정이는 삼겹살을 싫어함으로 차돌박이를 주문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는  김현식을 들었다. 한 해나 지나서야 서울의 겨울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by 아날로그 | 2009/11/14 03:03 | Living in Virginia | 트랙백 | 덧글(6)
밤에
또 하루가 지났다. Sheila의 룸메이트인 Grace가 낙지볶음을 만들어줘서 맛있게 먹었다. 재미도 없는 한국방송에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Sheila와 한 시간 정도 영어연습을 했다. 꾸준히 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은 같이 점심을 먹는 친구가 학교에 오지 않아, 한 친구와 단 둘이 점심을 먹었다. 평소보다 조금더 집중해서 대화를 나눌수 있었고, 때마침 매일같이 늦게 끝나는 오전수업도 정시에 끝나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다. 나는 대화 나누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만 한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 글은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아무런 척도도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에 속아넘어가는 가련한 존재이지만... 박찬호의 귀국 인터뷰를 보았다. 방송출현으로 비치는 자신의 모습조차도 일종의 미화 같아 꺼려진다는 이야기에 그에게 더 반해버렸다. 나는 말로써 글로써 얼마나 스타일리쉬하려 애쓰는가. 내가 현재 가장 좋아하는 한국인은 박찬호이다. 누군가가 나를 좋은사람으로 보는 것과 진짜 나 사이에서 나는 조금 이중적이다.

누군가의 관심과 애정에 책임감을 가져야 마땅하건데 언제나 나는 함량미달이다. 절제라는 단어가 들어설 자리가 없는 삶. 모든 것에 자유롭게, 하지만 어떠한 책임도 지지않고 살고 있다. 언젠가는 분명히 돌아올 부메랑이거늘... 돌아보지만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어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밤 12시가 넘었지만 또 무엇이 문제인지 집 주인 Nick의 새로운 여자친구는 소리지르기를 멈추지 않는다.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내일부터 일본인 친구와 방과 후 공부를 하기로 했다. 어떤 세계가 열릴 것인가.
by 아날로그 | 2009/11/11 14:35 | Living in Virginia | 트랙백 | 덧글(2)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