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우산을 쓰지 않는다? Living in Virginia

      한 여자가 유모차를 끌고 집 앞 도로를 지나가고 있다. 미국 도로에는 사람이 걷는 길이 없다. 

미국에 처음 오고 얼마가 지나지 않아 친한 친구가 살고 있는 뉴욕에 다녀왔다. 그곳에 지내는 동안 비가 몇 일 내렸는데 멋쟁이 친구가 내게 우산을 사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나무로 만들어진 우산을 찾는 것이 쉽지 않지만 자신이 얼마전 발견한 나무 우산은 멋진데다가 가격도 합리적이라고. 그렇게해서 손에 넣게된 우산은 어쩐일인지 비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내리는 버지니아에서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게 되었다. 몇 주전 dc에서 비오는 날 놀러나갔다가 우산대에 이상이 있다는걸 알아채기까지...

미국은 자동차가 발과 같은 역할을 하는 나라다. 처음 미국에 온다고 했을때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한 친구에게 "집을 학교에서 가깝게 잡았으니 걸어다니지 뭐..." 라는 말을 했다가 "부끄러울껄" 이라는 대답을 들었을때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걸어다니는게 부끄럽다고? 왜? 그 의문은 이곳에 도착하고 오래지나지 않아 명확해졌다. 미국은 사람이 걷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다. 첫째로 사람이 걷는 길이 아예 없다. 일반적인 미국의 도로는 한국의 고속도로를 생각하면 쉽다. 차도만 있고 인도가 없다. 기본적으로 차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한 집에 차가 여러대 있으면 그것은 부의 상징이지만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것이다. 2인 이상인 미국 가정에 차가 한 대 있다. 그것은 빈곤의 의미와 동일하다. 모두가 차로 달리는 고속도로 양 끝의 잔디 위를 걷는다?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걷는 사람은 존재한다. 한 부류는 건강을 위해 런닝을 하는 백인들이고, 나머지 한 부류는 차를 살 여유가 없는 불법체류자나 이민자 들이다. 이곳에도 대중교통이라는건 존재하는데. 출퇴근을 위한 것이지 일상을 위한 것은 아니다. 주중 출퇴근 시간에만 운용하는 것이 대다수이고 혹여 종일 운행한다고 하여도 30분, 1시간 단위의 것이 많다(이곳은 워싱턴d.c와 가까워-수도권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비교적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는 편일 것이라는걸 가정하면 다른 지역의 교통체계는 알 만 하다). 차가 없고 누군가에게 신세지긴 싫은데다가 돌아다니고 싶은 욕구가 큰 나는 정말 열심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인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자의 절대다수는 중남미계 이민자나 불법체류자들이거나 가난하고 교양없는 흑인 백인 저소득층이다. 특정 그룹이 차가 없이 그 불편한 대중교통의 체계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미국사회내에서 그들의 사회경제적 여건이 어떠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우리는 어딘가에 가야할 때 걸어갈만한 거리인지, 차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 거리인지를 생각한다. 동네 슈퍼에 가는데 차를 가지고 가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흔히 걷고 차를 타고의 문제를 거리의 문제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가까운 거리도 걸어가고 싶지 않아진다. 집에서 3분 거리의 레스토랑도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일반이다. 제대로된 인도, 횡단보도 하나 없는 거리에서 3분을 걷는 다는 것은 잘 닦여진 시내를 30분 걷는 것보다 힘든 일이다. 시스템이 사람의 행동을 규정한다.

미국의 자동차가 발과 같다면 그것의 가격이 비쌀리가 없다. 미국의 자동차 가격은 비교적 저렴한데다가, 모두가 차를 소유하고 있다보니 중고차 시장이 잘 발달되어 있다. 중고차는 딜러도 많고 선택의 범위도 매우 넓은데 낡은 세단형이 1000불대 부터 시작한다. 기름값도 매일을 발과 같이 사용하고도 한 달 유지비가 100불이 채 안된다고 들었으니 유지비까지 매우 저렴한 편이다. 한국에서는 어린 학생이 개인차를 소유한다면 부르주아 취급당하기 쉽지만 여기서는 차는 필수재이기 때문에 부의 상징과는 거리가 멀다. 처음 한국에서 이곳에 올 때 자전거로 살아가리라 다짐했지만 이곳에서 차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편해서가 아니라 정말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 나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학생이 차를 가지고 있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친구의 차를 얻어타야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미안한 일이었고, 나 자신의 지위가 더욱 마이너리티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차로 3분이면 움직일 거리를 도로가 없는 관계로 삥 돌아가다보면 30분 이상이 소요되었고, 바로 옆에서 차가 빠르게 달리는 모습을 피하고 있자면 야생에서 사자에게 쫓기는 사슴의 심정이 되기도 했다. 가장 불편한 것은 교통망에 의해 자유가 제한된다는 점이었다. 갈 수 있는 곳도 움직여야 하는 시간도 버스의 노선과 운행 시간에 좌우된다는 것은 발달하지 못한 버스 노선과 출퇴근 시간에만 한정적으로 운용되는 운행 시간을 생각하보면 심각한 억압이었다. 우리가 사회화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회 시스템의 요구조건을 갖추지 못하는 사람이 일면 도퇴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요구조건이 차의 소유와 운전 능력의 습득이라면? 

미국 영화<40살까지 못해본 남자>를 보면 주인공 남자에게 바보 이미지를 씌우는데 그 남자가 차가 없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 사용된다. 한국에서 몇 해 전부터 생겨난 차를 처분하고 자전거를 이용해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환경과 건강, 절약까지 생각하는 사람들로 비춰지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의 국토라는 것은 한국에 비해 너무 거대하여 그 많은 차에도 불구하고 도로사정, 주차공간 걱정도 없는 편이다. 또한 그들이 커다란 국토를 황무지로 남겨두지 않고 모두 거주지화 하는 과정에서 차 중심의 도로체계가 생겨났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미국보다 큰 국토를 가지고 차 없이 살고 있는 국가도 많이 있으며 미국 내부에서도 뉴욕, 위싱턴D.C, 시카고와 같은 대도시는 역시 대중교통체계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결국 사람들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우산을 쓰지 않는데다가 여름에도 더위를 느낄 틈이 없다. 비가 오지 않아서가 아니고, 덥지 않아서가 아니다. 굉장히 인위적인 체계이다. 이 인위적인 체계는 정상이 아니지만 내부에서 그것을 알기란 쉽지 않다. 차가 자신의 다리가 되어야 하는 체계는 과연 정상일까? 미국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는 총기허용이나 공공보험의 부재 등 기형적인 부분이 많이 있으나 이 문제 또란 그것 만큼이나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인위적인 체계를 뒷받침하기 위해 벌어진 자원전쟁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자동차 라는것 자체가 환경을 담보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닌가.


덧글

  • 2010/05/21 05:1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아날로그 2010/05/21 23:43 #

    떙큐다 :)
  • 깝노노 2010/11/17 01:47 # 삭제 답글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미국에서 차를 저렇게 많이 사용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째서 그런지 잘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글 읽으니까 바로 이해되는군요.
  • 아날로그 2010/11/17 01:56 #

    안녕하세요. 부끄러운 글 잘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
  • 나그네 2014/10/21 18:03 # 삭제 답글

    좋은 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네요.
    미국에서 대중교통 이용하기란 dc나 뉴욕이 아니면 힘들죠. 큰 국토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정도가 너무 큰 미국의 기형적인 교통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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