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18일 20110301-

5월 18일이다. 광주가 넘쳐난다는 느낌을 준 것은 심심찮게 개봉된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 때문이다. 그리고 fact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학내 세미나의 소재로 광주는 진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재호와 판소리'라는 본래 희망했던 발표주제 대신 '5.18과 전남도청'을 발표주제로 받았을 땐, 솔직히 무슨 할 말이 더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한 선생님은 1980년 광주에서 희생된 시민의 숫자를 알지 못하는 우리를 보며, 광주가 벌써 과거가 되었는가라는 탄식을 내뱉었다. 나는 그것이 선생님의 세대와 구별되는 우리 세대의 광주라는 생각을 했다. 내게 1980년 광주는 응당 역사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에서 나고 자라 광주민주화운동에 남다른 소회를 갖고 있는 팀원 앞에서 5.18 발표는 식상하다고 이야기했던 것은 아무래도 실수였다고 생각했다. 전남도청 별관 철거 문제에서 보듯이 아직도 광주는 누군가에게 현재형이니까. 그렇다면 80년 광주는 나의 광주와 광주사람의 광주로 나뉘는건가?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축소재생산되는 광주에 대한 불만을 보았다. 칼로 소녀의 젖가슴을 도려내는 공수부대의 행동은 내게 전형적인 광주신격화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80년 광주에 대한 부채감을 안고 살아가는 어머니를 둔 그는 그 분명한 사실이 미디어에 의해 축소재생산되어 누구도 공식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에 분노했다. 광주를 축소하는 사람들. 광주를 광주 사람들의 전유물로 남겨두는 사람들... 전자는 내가 혐오하는 극우반공세력이고 전자와 크게 다르지 않는 후자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광주는 오늘날 내게 과연 무엇일까? 포기하자니 마음에 걸리고 풀자니 쉽게 풀리지 않는 그 문제는 결국 그날의 현장의 역사적 성격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들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광주사람들. 그들이 피를 흘리며 우리들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덕분에 현재의 우리는 멀게만 보이던 민주제도를 향유하고 있다. 그리고 광주는 민주주의의 성지가 되었다. 민주주의는 피로 성취되었음 잘 드러내는 명명이다.
광주의 희생의 수혜자인 나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80년 5월의 광주가 기억되야 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가 아닐까 한다.

덧글

  • 2011/05/22 21:5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아날로그 2011/05/23 00:09 #

    그래. 네 말이 맞아. 무엇보다 죽은 역사가 되게 두어서는 안되겠지. 네 말대로 역사공부는 '되새김'이자 끊임없는 의미부여인데 내가 그걸 완전히 잊어버렸던듯. 너 B0 밖에 안되는데 제법이다? ㅎ

    오늘 또다른 발표준비를 하다가 본 글.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지만 민주주의야말로 어떤 목표점이라기 보다는 과정으로서 존재한다. 끊임없이 그 내용과 가치, 그것을 달성할 방법에 대해 질문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는 그 본래의 뜻을 잃는다.....성취한 어떤 것을 자부하고 자랑하는 방식으로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순간 그 성과는 딱딱하게 굳어져 진열장에 갇힌다. 4월혁명을 미완의 혁명으로 기억하듯이 5.18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추구했지만 아직도 우리가 이룩하지 못한 것들을 되새겨야 한다.'
  • 2011/05/23 22: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아날로그 2011/05/23 22:13 #

    아니. 홍석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의 '1960년의 마산과 1980년의 광주'라는 글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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